공지사항

등록일 2026-06-01 조회수 164
제목 [2026 더 비기닝] 1950년 6월 25일, 군통수권자로서 대한민국의 첫 전쟁 지도(指導)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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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군통수권자로서 대한민국의 첫 전쟁 지도(指導) 개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조선인민군은 38선을 넘어 기습적인 불법 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는 국제법을 위반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깨버린 전면전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후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행정 체계와 군사적 기반이 아직 완비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로서 국가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전쟁 지도에 나섰습니다. 그는 혼란과 공포 속에서도 국민에게 전시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며 대한민국 정부의 전시 대응을 이끌었습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즉각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습니다. 급박하게 변화하는 전황 속에서 국군 지휘 체계 유지, 정부 기능 지속, 국제사회 지원 요청 등 국가 생존을 위한 여러 결정을 동시에 진행하였습니다.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지도자로서의 깊은 고뇌가 그대로 담긴 1950년 7월 4일 발표된 ‘전쟁 경과에 대한 대국민 특별방송’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공산군이 서울에 침입하게 된 것은 생각할수록 통분해서 차라리 죽어서 모르고 싶은 일입니다. 잠시라도 이 난역배들이 우리 수도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수욕입니다. 내 한몸이 국군의 앞에 서서 죽기로서 싸워야 옳을 것인데, 피해서 나온 것은 구차하게 목숨을 위해서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첫째는 내가 경무대에 있으면 군경이 전투상 도리어 곤란을 당하겠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이고, 내가 나와서 세계에 호소해서 공론이 일어나야 할 것을 생각한 것이 둘째 이유인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군사 수준은 모든 측면에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전쟁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국가 존립이 걸린 위기로 인식하며 사력을 다해 대응하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들의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특별방송의 마지막 부분에는 극한의 혼란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서로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지키며 위기를 함께 이겨내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절박한 요청이었습니다. 
“무죄한 동포들이 난역배의 손에 피해를 당하고 무수한 곤란을 당하고 있지만 우리가 서로 인내하며 서로 구제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분투하여 나가야할 것이니 애국동포들은 이를 절실히 양해하고 굳센 마음을 끝까지 붙잡고 나가기를 부탁합니다.”

전선에서는 국군 장병들이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고, 후방에서는 국민들이 피란과 혼란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 장병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이국땅, 한반도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이 모여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 우리는 엄숙하고 경건한 나라사랑의 마음을 더 크게 갖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되새기며, 나라를 위한 거룩한 책임과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남과 이북의 시간이 서로 달랐습니다. 전쟁 발발과 관련된 당시 기사들과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리의 일기에는 서울 시각 기준 오전 5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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