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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6-07-01 조회수 73
제목 [2026 더 비기닝] 1954년 7월 30일, 대한민국 최초로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법학박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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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7월 30일, 대한민국 최초로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법학박사학위 취득

1954년 7월 30일, 미국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명예법학박사학위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이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그의 헌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존경과 인정이 담긴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날의 행사는 이승만 개인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904년 8월 9일, 특별사면령으로 한성감옥에서 5년 7개월 만에 석방된 청년 이승만은 대한제국의 특사의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당시 대한제국은 국권 침탈의 위기에 놓여 있었고, 미국에 도착한 청년 이승만은 미국 사회와 국제사회를 상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2년 6개월 동안 수학하며 학부과정을 마쳤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나의 조국으로부터 미국에 고등교육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니었으며, 또한 대학의 학위를 얻으러 온 것도 아니었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나는 구한국 정부로부터 한국독립을 위하여 일하도록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나는 한국공사관에서 일하는 것 이외의 여가를 고등교육을 받기 위하여 쓸 수 있다는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후일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의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회고는 이승만의 미국 유학이 개인의 성공이나 학위 취득을 위한 길이 아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에게 학업은 개인적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54년 그는 모교인 조지워싱턴대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이끌었으며, 6·25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승만으로 그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국제사회의 연대였습니다. 6·25전쟁을 통해 공산주의가 개인과 국가의 자유를 어떻게 위협하는지 절실히 느낀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공산주의와 그 위험을 아는 우리들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단합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지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단합과 행동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우리 모두 학문의 자유뿐 아니라 세계 모든 이들의 완전한 자유를 위하여 함께 분투해 나갑시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자유를 지켜내고, 국가 재건에 나선 대한민국의 지도자에게 조지워싱턴대학교는 명예법학박사학위를 수여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자유와 독립을 향한 대한민국의 여정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았다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는 1904년 컬럼비안 대학교(The Columbian University)의 변경된 명칭으로서, 청년 이승만의 입학신청서(1905)에는 컬럼비안 대학교(The Columbian University)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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