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등록일 2026-08-18 조회수 17
제목 (2026. 8. 18.) “카이로 선언 ‘한국 독립’ 문구… 이승만이 루스벨트 움직인 것”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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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연구자 오영섭 박사
신간 ‘이승만의 독립운동’서 밝혀

이승만 전 대통령/ 조선일보 DB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우리가 해방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1943년 12월 미·영·중 정상의 카이로 선언에서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어 가능했다. 이에 대해 “카이로 선언의 문구는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움직인 결과”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연구서 ‘이승만의 독립운동’(선인)을 낸 한국현대사 연구자 오영섭 박사(안중근의사숭모회 연구위원장)는 “카이로에서 루스벨트와 중국 장제스(蔣介石)의 회담 때 한국 문제를 먼저 제기한 쪽은 루스벨트였고, 장제스는 이 제안에 동조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것은 ‘김구 등 임정 요인이 1943년 7월 장제스를 만나 독립을 도와주겠다는 보장을 받음으로써 카이로 선언이 이뤄졌다’는 기존 연구가 과장됐다는 의미다. 당시 장제스는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강조했고, 한국 독립을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하지는 않았다.

1943년 카이로에서 회담을 벌인 연합국 정상. 왼쪽부터 장제스(중국), 프랭클린 루스벨트(미국), 윈스턴 처칠(영국)/조선일보 DB

여기서 루스벨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이승만을 주목해야 하는데,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① 미국 국무부는 당시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을 정리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1942~1943년 한국인의 주장을 옹호하는 상당한 압력(considerable pressure)이 대통령에게 가해졌다. 한미협회, 이승만, 미 의회의 여러 의원들이 한국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했다.” 한미협회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설립한 단체였고, 미 의원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인물 역시 이승만이었다. ② 이승만의 주요 로비 대상 중 한 명이었던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는 1940년 한국 이재민의 구호 사업 등 친한 활동에 헌신적으로 나섰다. 당연히 루스벨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오 박사는 “이승만 외교 독립운동의 성과를 무시하는 일각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진주만 사건 이후 카이로 선언까지 미국에 있던 이승만과 중국의 김구는 임정 승인과 독립을 위해 협력하며 외교 독립운동에 분투했다”고 했다. 결국 카이로 선언의 한국 독립 조항은 이승만과 김구의 합작품이며, 둘 중 이승만의 역할이 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karma@chosun.com

 

[기사원문]
“카이로 선언 ‘한국 독립’ 문구… 이승만이 루스벨트 움직인 것”